며칠 전부터 입에서 맴돌던 '빼앗긴 들에도 봅은 오는가'를 다시 읊조려 보았습니다.
중간 중간 사라져버린 기억은 편린은 넘어서더라도, 입속에서 맴도는 갈증에 목 말랐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시간을 내어 수유리에 다녀와야 겠습니다.
36년의 억압에서 벗어난 들녘을 민초들에게 전하기 위해 일어섰던 그 날이라도 기억해야 겠습니다. 너무도 오랬동안 잊고 살았습니다. 미안합니다. ㅠ.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은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우리네 삶 만큼이나 절절한 사연을 안고 있는 며느리 밥풀 꽃,
꽃잎 안쪽 아래에 볼록 튀어나온 돌기부분이 하얗게 되는데 모양이 마치 밥알같다.
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