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눈을 뜨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주로에 나선다.
어둠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새벽 5시를 앞둔 시각에 율동 공원을 몇 바퀴 돌아 본다.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일상화 된 이후로는 새벽 공기의 알싸함을 느끼는 것은 사치가 되었고, 그저 거친 호흡이 구비(口鼻)와 마스크 사이에서 맴돌다 식어 흐르는 물기만이 그 자리를 넘겨 받아 찝찝함을 전한다. 새벽녘이라 주변의 한산함을 핑계로 마스크를 내려보지만 영하 7도의 기온임에도 알싸함은 사뭇 다르다.
문득 5월의 알래스카에서 조깅을 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새벽녘이랄 것도 없이 백야가 시작할 때 쯤의 알래스카는 경험해 보지 못한 알싸함을 코끝에서부터 폐부 깊숙이 밀어 넣어 주었었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한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습관처럼 페북 담벼락을 쓸어올리다가 가끔식,종종 추억의 음악을 전하는 김호기교수께서 익숙하면서도 좋아하는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 레오나르드 코헨)의 So Long, Marianne 소개하는 글을 보게 되었다.
"팝 음악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다섯 명의 시인을 꼽으라면, 나는 존 레논, 밥 딜런, 레오나르드 코헨, 버니 토핀(엘튼 존 노래들의 작사가), 테일러 스위프트를 들고 싶다." 라는 글로 시작하는... 음악에 조예가 깊지 않아도 팝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 본 사람이라면 들어 봄직한, 동의를 표하는데 그리 어려움은 없어 보이는 선정이었다.
레오나르드 코헨, 내게는 레너드 코헨으로 익숙한 캐나다 출신 싱어송라이터로 음유시인이란 닉으로 불렸던 전설의 뮤지션. 2016년 작고한, 그래서 더 이상 그 마초적 느낌까지 살짝 전해주는 모습은 동영상 속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레너드 코헨과의 인연은 영화 "Pump up the volume, 1990"의 OST인 "Everybody Knows, 1988"을 들으면서 시작되었다.
<Leonard Cohen - Everybody Knows (Live in London, 2019)>
https://www.youtube.com/watch?v=xu8u9ZbCJgQ
그 시절에 영화를 봤는지 조차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어쨌든 이후에도 몇 번은 보았던 영화는 뉴욕에서 애리조나로 이사하게된 내성적 성격의 고딩 마크에게 뉴욕 친구들과 교신하라고 아마츄어 무선통신기(HAM)를 사주게 되고 여차저차해서 이러저러하다보니 해적방송을 하게되면서 젊은이들의 비상구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는 90년대 감성을 듬쁙 담고 있는 영화다.
(그러고 보니 내가 HAM 자격증을 취득하고 개국을 한 것도 그 즈음인 듯 하다. DS1AHC)
"Everybody Knows"가 1988년에 발표되고, 영화가 1990년에 상영되었으니 음악과 영화가 표현하는 시대의 모습은 연결되어 있다. 80년대 후반을 코헨은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았을까? 감미로운 목소리로 뱉어내지만 가사는 냉소적이고, 비관적이다. 그리고는 경고한다. 체념적이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Everybody knows that the dice are loaded
Everybody rolls with their fingers crossed
Everybody knows the war is over
Everybody knows the good guys lost
Everybody knows the fight was fixed
The poor stay poor, the rich get rich
That's how it goes
Everybody knows
...
And everybody knows that the Plague is coming
Everybody knows that it's moving fast
Everybody knows that the naked man and woman
Are just a shining artifact of the past
Everybody knows the scene is dead
But there's gonna be a meter on your bed
That will disclose
What everybody knows
...
Everybody knows, everybody knows
That's how it goes
Everybody knows
Everybody knows
노래의 가사는 영화의 플롯과 이어져 있다. 그리고는 엄정화, 최민수, 허준호 같은 명 배우(현재 시점, 그 시절에도 그랬었었듯)가 출연한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1993) 같은 영화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다라는 추측을 해 보게 된다.
1994년에 발표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와도 연결되는 것을 보면 시대의 분위기는 공간을 넘어 동질성을 갖는 것으로 보는 것이 허무맹랑한 억측은 아닌 듯 하다.
www.youtube.com/watch?v=xLDehtTqyig
Leonard Cohen - Everybody Knows - Pump up the volume -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 교실이데아로 이어지는 사고의 연결은 할 말을 다 담지 못하고 덮는다.
2021.02.19. 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