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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ler/Mountaineering

범봉에 오르고 싶다.

문득 범봉 생각이 떠오르면서 촉촉한 빗줄기를 머금고 있을 범봉을 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비선대에서 천불동으로 이어지는 계곡 초입의 설악골 들머리에서 시작되는 천화대 릿지의 끝에 서 있는 범봉.

한 여름의 익어가는 바윗살 속에서도 의연하게 산꾼들의 마음을 기다리고 있던 곳.

범봉에 오른것이 두해 전이었던가?

왕관봉, 희야봉을 거쳐 하룻 밤의 천화대 능선상에서의 비봑으로 오를 수 있었던 범봉.

오늘따라 왜 이리도 범봉에 눕고 싶은걸까?

범봉의 고빗사위를 힘겹게 넘어 올라쳐 손이 타들어가는 크랙속으로 재밍을 해 넣으면서 그 위에 오르고 싶다.

범봉에 누워 가야동계곡을 타고 흘러온 달빛이 1275봉을 비출 때 난 아이거북벽의 거미를 떠올리리라.
또다시 거미에서 허덕거리며 엑시트 크랙으로 찾는 가엾은 중생이 될지라도,
다시는 이런 짓 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으리라는 기약없는 푸념으로 욕지기를 내 뱉는다해도 난 범봉에 눕고 싶다.

범봉에 올라 건너편으로 무너져 가는 황철봉 너덜을 그려보리라. 저항령 계곡을 힘겹게 올라 황철봉을 넘어 북주능으로 올라서면 미시령으로 이어지는 길에 데날리의 웨스트버트레스같은 지겹고도 매서운 바닷바람이 나를 맞이하리라.

동에서 부는 태평양의 바람과, 서에서 부는 태평양의 바람이라는 차이 뿐. 똑같은 짠 내음 가득한 바람인것을...

범봉을 그려본다. 그속에서 트랑고 타워를 그려보고, 아이거 북벽을 끄집어 내어보지만 지나온 천화대 능선속에서 묻어나는 잔상은 데날리(맥킨리)의 아메리칸 다이렉트 루트인것을...

오늘처럼 설악에, 범봉에 사무치게 오르고 싶은 날. 난 디날리를 그려본다.


<사진 출처 - 인터넷 퍼옴>

폭 (2003.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