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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ler/Mountaineering

토왕위로 은하수는 넘어가고... ('97 토왕폭 좌우벽 등반기)

 

 

- 프롤로그 -

 

설악동의 여명은 태양빛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동해바다에서 떠오르는 햇살이 달마봉을 넘어 울산암에 도착할 때쯤이면 설악동에는 빛의 그림자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권금성으로 이어지는 케이블카 라인이 희뿌옇게 보여지고, 울산암 옆으로 황철봉과 마등봉 사이의 커다란 브이(V)자 협곡 – 저항령이 태양빛을 토해낼 때쯤, 비로서 설악동은 잠에서 깨어난다.

 

- 비룡폭포 –

86년 봄. 난 첨으로 설악을 보았다. 그 중에서도 제일 첨 가본 곳이 비룡폭포였다. 작은 색 하나에 간식거리 몇 개 지고 줄 맞춰서 선생님 따라서 오른 던 그 길. 그러니까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였다. 그 이후로 두번 정도 토왕을 찾을 때면 어김없이 지나쳐야 하는 비룡폭포. 한 번은 능선으로 돌아가는 부분을 피하려고, 비룡폭포을 등반하면서 토왕골을 직접 쳐 나간 적도 있었다.

시나브로 다가오는 여명을 등에지고 30키로에 달하는 배낭을 짊어 매고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다 보면 어는 새 “입산금지” 표시판이 일행을 기다린다. 표식을 뒤로하고 비로서 토왕골로 접어들면서 비로서 앞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간 밤에 내린 비로 길을 진흙길로 바뀌어져 있었다. 훈련이랍시고 빙벽용 비브람을 신고 올라가는 바윗길은 참으로 곤욕이다. 더욱이 나를 포함해 두 명은 서울에서 설악동까지 6시간동안 쉬지않고 운전을 하면서 달려오지 않았던가? 졸린 눈, 고픈 배. 어는 것 하나 내 편이 없는 이 마당에 신발마저 도와주질 않는다. 모든 것을 팽개치고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 들 때쯤, 토왕은 살포시 웃음을 보이며 내 앞에 나타난다. 아니다. 저건 웃음이 아니다.

 

- 토왕성 폭포 -

180여미터의 수직에서 퍼붓고 있는 상단은 보기만 해도 기가 질린다. 60여 미터의 중단은 그런대로 느낄만하다. 더욱이 밑에서는 중단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80여 미터의 하단 역시 떨어지는 물줄기가 오버행을 이루며 선을 그리고 있다. 하단 밑까지 370여미터. 국내 최대의 폭포다. 겨울에도 잘 얼지않는 폭포. 토왕에 미친 산꾼은 겨울이면 토왕이 얼기만 기다리며, 몇 달이고 이곳에서 죽돌이 생활을 하지 않았던가? 토왕을 처음 오른 크로니 산악회의 박영배 형님 또한 토왕에서 살았던 날이 얼마였던가? 그렇게 여름의 토왕은 내게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89년 겨울. 처음으로 토왕에 피켈을 꽂을 때 늦어도 내년이면 상단을 오르리라 결심했지만, 그 다음해 일어난 사고로 난 토왕을 마음속에서 접어야만 했다. 이제 겨울이 아닌 여름에 그 상단위에 펼쳐진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러 이렇게 앞에 선 것이다.

 

- 미지의 세계 -

 

- “클라이머의 기쁨”에서 발췌

눈보라가 몰아치는 계절에

얼어붙은 빙폭벽을 오를 때

바다보다 넓고 깊은 우리들의 가슴에

파도처럼 밀리는 이 기쁨 밀리는 이 기쁨

 

얼어붙은 빙폭벽앞에 서면 대부분 하늘말고는 뵈는게 없다. 그리고는 빙폭 넘어로 펼쳐진 세상을 상상한다. 이 폭포는 어는 곳에서 시작하는 것일까? 당연히 위로 연결된 계곡이 있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겠지만,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은 그 빙폭을 오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지난 겨울 잦은바위골의 100M폭을 오를때도., 월악산의 팔랑소를 오를때도, 설악의 실폭, 대승, 소승, 그리고 강촌의 구곡을 오를때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목마름은 여전했고, 몇번을 올랐건만 그 목마름은 더해만 갔다. 이제 비로서 그 눈보라가 몰아치는 빙폭이 아니어도 토왕 상단을 올라 미지에 세계에 대해 개안을 할 수있다 생각하니 그냥 뿌듯하기만 하다.

 

- 샤워 클라이밍 –

토왕이 바라보이는 줄기의 끝자락 밑에 캠프를 설치하고,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토왕을 감싸고 있던 개스가 말끔히 물러나고, 벽이 반짝이고 있었다. 장비를 착용하고 상단을 향한 오름짓을 시작한다. 첫 피치를 후배가 선등을 하고 세컨으로 내가 오른다. 후배의 오름짓이 젖어있는 바위만큼이나 매끄럽게 첫 피치를 정리한다. 장비를 넘겨 받고 두 번째 피치 선등으로 내가 오른다. 역시 토왕의 계절은 겨울인가보다. 보이는 확보물 모두가 시뻘겋게 녹이 슬어있고, 반쯤은 대가리가 터져 있는 등 전체적으로 확보물이 극히 불량한 상태다. 확보물이 불량하면 그만큼 심적 부담이 커진다. 게다가 홀드라고 튀어나와 있는 바위들은 힘을 주면 빠지거나 부서진다. 아~ 난 어쩌란 말인가? 이런 걸 보고 설상가상이라 하던가? 폭포 바로 옆으로 오르면서 포말로 부서지는 토왕의 깃털을 느껴야 하는 건, 이 더운 여름 날에 시원하기보다는 몸서리가 쳐질 만큼 몸이 떨려온다. 이런 걸 샤워 클라이밍이라고 하는가 보다. 차라리 떨어지면 바닷물에 쳐 박히는 바닷가의 해벽이 나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두 피치를 끝내고 다시 선등을 후배에게 넘겼다. 가볍게 세번째 피치를 오르고 나니 5시. 전원이 올라온 시간이  오후 6시가 넘어간다. 이미 후배는 나와 등반 계획을 토의 한 후 상단을 오르고 있었다.

 

- 토왕 상단 -

토왕 상단의 좌우벽 상태는 극히 불량해 보였다. 오후 내내 비쳐주던 태양의 노고도 무시한 채 잔혹하게도 물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말라있던 좌벽의 끝자락으로 등반 코스를 잡았다. 안자일렌을 하고 상단을 오른다. 어려운 구간이 나타나면 충분한 공간에서 상대를 확보를 보면서 오름짓을 계속한다. 중간 중간 나타나는 힘든 부분에서 실수 한번이면 나랑 줄을 같이 묶은 동료들은 어떻게 될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안잘일렌을 했다하더라도 충분한 확보물이 없는상태에서… 이런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기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형님이 한 말씀 던지신다. “성원아! 바위보다 풀이 더 믿음직하다.” 그 정도로 바위 상태가 불량하다. 당기면 빠지고, 그때마다 “낙석”을 크게 외치고 누군가 있을지 모르는 밑에 있는 사람들이 맞지 않기를 빌 뿐이다.

상단 능선에 도착하니 멀리 활철봉 너머로 보이는 노을빛이 가득히 담겨져 전해온다. 중간 중간에 줄을 고정시켜놓고 후배와 먼저 토왕폭 상단쪽으로 접근한다. 상단 정상을 10여미터 남겨두고 형님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구겨진 담배 하나를 피워 물면서 설악의 품에서 알프스를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 무사히 내려갈 생각뿐이다. 해는 점점 기울어져 가고, 5명 중에 헤드랜턴이 하나도 없다. 하단 스타트 지점에 두고 온 것이다. 하단 밑에도 헤드랜턴은 하나뿐이다.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 너무 무모한 등반이었을까? 별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돌려가며 캠프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작성해본다.

형님들이 도착하시고, 먼저 앞장세우고 가는데 먼저 간 악우를 추모하는 비석이 서있다. 담배를 하나씩 붙여 올려놓고 잠시 묵념을 한다. 온갖 가지 믿음을 전달한다.

 

- 별빛 소나타 -

정상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간단한 행동식으로 요기를 하고, 서둘러 하강을 시작한다. 중단까지 5번의 하강. 중간 확보물이 극히 불량한 상태라 맘 놓고 매달릴수도 없다. 첫번째 피치, 커다란 나무에 묶여있는 하강링에 줄을 걸고 후배를 가장 먼저 내려보내고 형님들을 내려보낸다. 내가 맨 마지막이다. 내가 내려가기 시작할 때쯤에는 이미 해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별들이 반짝인다. 그믐이라 달빛은 구경하기도 힘들다. 날은 어둡고 상단에서 쏟아지는 물보라로 온 몸이 추위에 얼어가는 느낌이다. 칠흙같이 어두운 이 밤. 조심 조심 확보물을 찾아가며 하강은 이어진다. 상단 중간쯤에 있는 동굴에 도착하여 쉬고있는데 하강하시는 형님께서 한 마디 던지신다. “야~ 너네 저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서 바위를 꼭 잡고 있어. 그래야 볼트가 터지더라도 살지.” “??????” 그때 위에 남아있던 사람이 나를 포함하여 세명. 만약 우리가 그런 행동을 취하고 있다하더라도 형님이 하강중에 보트가 터진다면, 우리 4명은 저 밑 하단까지 아무런 걸림없이 내려갈 수 있을것이다. 물론 캠프까지는 아무도 갈 수 없지만. 그만큼 하강은 위험하다. 그냥 웃어넘기지만 모두의 얼굴에는 약간 씩 두려움이 스치는 것을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상단을 하강하고 중단을 안자일렌으로 건너 하단 하강 포인트에 도착하니 이제 두 피치만 내려가면 따듯한 옷도, 밝은 불빛을 주는 랜턴도 있다. 역시 후배를 내려보내고… 형님들을 차례대로… 마지막 피치다. 확보물이 불량하면 하켄을 박고, 슬링을 교체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곳은 정말 불량하다. 링볼트에 일이 터져있는 하강 포인트. 마땅히 하켄을 박을 만한 포인트도 없다. 마지막 형님을 하강시키면서 난 그냥 아무일 없기만을 밤하늘에 떠오른 은하수에 빌었나 보다. 그렇게 나까지… 암벽화를 벗으면서, 랜턴 불빛에 누런 이를 내보이면서 이제 30분 정도 남은 마지막 하산길을 생각한다. 다섯명이 칠흙같이 어두운 밤에 랜턴 하나로…

 

- 은 하 수 -

1시 20분. 우리의 흔적이 별빛에 반사되어 어렴풋이 보인다. 드디어 캠프다. 장비를 풀고, 밥물을 재고, 소주잔을 챙긴다. 내려오면서 형님 한 분이 하던 한마디로 웃음이 떠오르는건 내가 이 자리에 무사히 앉아 있기 때문일까?

형 : “야! 성원아~ 아까 낮에 있던 그 사람들이 우리 술 가져갔으면 어쩌냐?

원 : “엉? 응~ 설마”

형 :“ 술은 나두고 차라리 가져갈려면 누구 배낭이나 하나 가져가라”

원 : “ ?????????????”

형 :”야~ 술 가져가면 5명이 욕하지만, 배낭가져가면 한 사람만 마음 아프면 되자너…”

원 : “헉~~~”

 

막소주 댓병 하나. 팩소주 5개. 이게 우리가 가진 술의 전부다. 약간 적다는 느낌이 들 때 우리는 항상 미련을 갖는다. 오늘도 그런 날이 될 것  같은 느낌…

 

‘밤 하늘의 은하수는 어느쪽으로 넘어가는 것일까?’

“북두칠성은 왜 저리도 크게 보이지? “

“어~내 침낭 어디다 펴 놨더라?”

“야~ 어디 술 더 없냐?”

“낼은 어디로 갈꺼니?”

“형~ 이제 그만 자자.. 벌써 4시다”

“……”

“……”

“……”

“zzzzzz”

“zzzzzz”

“zzzzzz”

 

1997년 6월 6일 등반기.

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