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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ler/Mountaineering

지리산, 반쪽짜리 산행기


Prolog

해가 바뀌고 새로이 마음을 다 잡으며 한 해의 계획을 세울 때, 그 계획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는 것은 언제나 지리산이었다. 2006년 힘겹게 데날리를 오르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내 마음은 설악과 지리에 있었다.

봄 날의 세석평전을... 한 겨울의 칠선계곡, 가을 저녁노을을 그리던 반야봉 능선을. 그리고 때를 가리지 않는 주 능선을... 이렇듯 지리산은 항상 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고, 천왕봉에서 시작하는 백두대간을 달리고 있었다.밤새는 줄 모르고 하늘의 은하수를 보면서 나누던 술 한잔에 어우러지던 산우들, 쏟아지는 소나기 속에서 간단히 식사를 때우면서도 모가 그리도 좋은지 히히덕 거리던 동료들, 선후배들, 몇몇은 곁을 떠나고 또 몇몇은 산을 떠났건만 지리산은 언제나 나의 마음속에서 오늘도 자라나 보다.

언뜻 스쳐간 것이었지만 지리산을 다시 찾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을 때가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라고...... 그러나 당치도 않은 생각이었음을 느꼈다. 엉뚱하게도 그 생각은 설악산에서, 아니 설악산에서 돌아온 후에 지리산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리산이 그립다. 참을 수 없을 만큼. 그래서 어쩌면 설악산을 괜히 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가끔씩 책상 서랍에서 지도를 꺼내본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러나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손가락을 따라 길을 짚어 본다백두대간의 시발점인 천왕봉에서 통천문을 지나 장터목으로, 주 능선을 따라 촛대봉을 지나 세석에 다다른다. 순간 고민을 한다. 모처럼 한신계곡을 내려서볼까? 벽소령 방향으로 반야봉의 슬픈 노을 속에서 잠들어 볼까? 발 길은 형제봉을 넘어 임걸령에 들어선다그리고는 돼지령에서 팔베게를 하고 누워 노고단, 성삼재, 만복대, 정령치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끝을 그려본다. 그 끝에는 두 발로는 갈 수 없는 백두대간의 끝. 백두산이 있다. 백두산에 올랐을 때를 추억하며 지도를 접는다.

지도는 초라하다. 햇살 내리쬐는 봄날의 화사한 모습도 휘영청 달 밝은 여름 밤의 풀벌레소리도, 너무나도 화려한 그래서 쓸쓸해 보이는 단풍 든 꽃밭 같은 모습도, 눈 내리는 아침 주 능선의 그 엄숙함도, 비바람 휘몰아치는 성난 모습도, 촉촉히 비에 젖은 다소곳한 절개도, 그 어느것도 지도는 보여주지 못한다. 그래서 지도는 꼭 백지 같다. 어느 그림이건 마음대로 그릴 수 있는 백지.

그 하얀 백지 위에 지리산을 그리고 위해 이번에도 여느 때와 같이 다시 지리산을 찾는다. 지리산은 언제나 똑같은 자리에서 우리는 맞이해 준다. 가끔은 왜 이제야 왔냐는 푸념 같은 비를 흩뿌리면서...

노고단

언제가 부터 지리산의 산장(대피소)은 호텔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의 모습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난방이 들어오고, 담요를 빌려주니 배낭에 꾸려야 할 짐들이 줄어든다. 그래도 담요를 빌리는 것보다 침낭과 매트리스를 가져가는데 익숙한 산꾼은 꾸역꾸역 배낭을 꾸린다. 이미 초겨울로 접어드는 산 날씨를 생각하고, 비 온다는 일기예보를 상기하니 늘어나는 짐은 무게를 가늠하기 힘들어진다.

산장 예약제로 천왕봉 직전의 장터목 산장을 예약하지 못한 이번 산행은 반쪽짜리 지리산 산행으로 다녀와야 한다. 벽소령 산장이후의 일정은 가늠해 보지도 않고 구례구로 향하는 기차에 오른다. 22:45분. 구례구로 향하는 마지막 기차다. 예전에는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11:45분 통일호를 다면 구례구에 4시가 넘은 시각에 떨구어 놓았는데, 통일호가 사라진 요즘은 새벽 3시에 구례구에 도착하게 되고, 이에 맞춰 성삼재로 향하는 마을버스가 기다린다.

성삼재 주차장에 도착한 일행 4명은 버틸 수 있는 만큼의 무게를 고려하여 짐을 분배하니 배낭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진다.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빗 줄기 사이로 랜턴불을 밝히고, 잘 다듬어진 길을 따라 노고단으로 향하는 첫 걸음을 움직이는데 기차에서의 토막잠이 전부이기에 몸이 무거워지고 홍일점 동료는 무척이나 힘들어하며 걸음을 뗀다. 이제 시작도 아닌데, 시작을 위한 준비단계일 뿐인데 거친 숨소리가 무척이나 힘들어 보이게 한다. 이때부터 "거의 다 왔다.", "이번 구비만 돌고 나면 쉴 것이다."라는 나의 거짓말(?)은 시작되었고, 그 거짓말은 우리의 일정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수 밖에 없었다.

아직 풀리지 않은 몸으로 노고단 산장에 도착해서 밥은 하고, 라면을 끓여 아침을 먹고 나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아침 7시.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노고단고개로 향하며... 아직은 많이 싱싱(?)하다.>


<노고단고개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주 능선에서의 홍일점.>

노고단고개에 올라서 주 능선을 따라 천와봉을 보며 반대편 만복대 방향으로는 천왕봉에서 시작한 백두대간 능선이 펼쳐진다. 봄날 원추리로 흐드러지는 노고단은 지금은 없다. 빗길에 드리워진 안개 자욱함만이 우리는 반긴다.

노고단의 높이는 1,507m. 천왕봉은 1,915m. 오늘의 목적지인 벽소령대피소는 1,340m이다. 노고단 고개에서 시작한 발 걸음은 높낮이를 오가며 지루하게 이어질 것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지루하고, 지겹고, 지리지리해서 지리산이라고... 한 고개를 넘으면 다시 한 고개가 나타나고 몇 개의 봉우리과 몇 개의 령을 넘다보면 어느덧 발 걸음은 오늘 저녁, 하루의 산행꺼리를 풀어 놓은 곳에 도착할 것이다.

돼지령, 임걸령을 지나며 반야봉 삼거리에 도착한다. 지리 10경에서 최고로 치는 것은 천왕일출이다. 천왕일출이야 그 장관이 대단하지만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천왕봉을 50여차례 올랐고, 일출을 기다린 새벽날이 그 절반에 가깝지만 구름위로 떠오르는 태양이 아닌, 끝이 없을 것 같은 동해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본 것은 서너번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천왕일출에 견줄 수 있는 것을 꼽을라 치면 반야낙조를 말한다. 반야봉 아래 심원계곡 건너 서북병풍이 짙은 암영을 드리울 때면 경건해지기까지 하고, 휘황찬란한 황금빛이 시나브로 사라져 가는 모습은 숙연함마저 느끼게 한다. 그러나 정상을 찾는 산꾼들의 발걸음은 쉽게 반야봉으로 향하지 않기에 반야낙조는 쉽게 볼 수 없다. 문득 반야봉 언저리에 대피소같은 시절이 있던 시절 산장지기와 의기투합해서 곡주를 나누다보면 산장지기는 반야낙조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땅 속에 묻어 두었던 머루주를 캐내어 마시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 형님은 지금은 무엇을 하시면서 삶의 낙조를 그리고 계실까?

반야봉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추스리면서 발길을 재촉한다. 비에 젖은 산로는 산꾼의 발목을 부여잡듯 쉽게 놓아주지 않기에 때로는 다독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엄포를 놓아가면서 다시오마라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남겨 놓은 채 떠난다.

삼도봉이다.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에 걸쳐져 있는 봉우리. 누군가는 전라북도 땅에서, 누구는 전라남도, 경상남도에 몸을 걸치고 흔적을 남겨본다.

<삼도봉에서의 흔적, 여전히 비는 내린다.>

                <지나온 길과 가야 할 길.>
 
이정표 없는 길을 걷다보면 언제쯤 이정표가 나타날까 하는 기대감과 불안감이 교차한다. 마지막 이정표를 떠난 지 꽤 되었다고 생각이 들때쯤 새로이 이정표가 나타나주면 힘들어도 가야 할 길을 제대로 가고 있구나 하는 안도를 하게 되지만, 내 마음속의 이정표가 나타나주어야 할 때까지도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이정표. 우리네 삶과 같은가 보다.

뱀사골 산장으로 이어지는 화개재에는 길에 지친 나그네들이 간단하게 비막이를 설치해 놓고 식사를 하고 있다. 비막이 밑으로 찾아 들어 따듯한 커피라고 한 잔 얻어 마시고 싶다. 굳이 찾아들라치면 나그네의 힘든 발걸음을 내치지는 않겠지만 우리에게도 기다리고 있을 작은 휴식처인 연하천산장을 향한다. 토끼봉을 넘어 명선봉을 올라서기 전 나와 또 하나의 동료는 연하천산장을 향해 줄달음 친다. 조금이라도 먼저 도착해 점심을 준비하여 부족한 시간을 보충하기 위하여...

연하천산장은  아주 작은 대피소이다. 밤을 맞이하는 산꾼도 그리 많지 않다. 조금은 지루하게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서다 보면 골목 모퉁이에서 밤늦은 아해의 귀가를 기다리는 엄마처럼 서 있다. 반갑다. 설악산의 희운각산장, 지리산의 피아골 산장과 함께 아직도 20여년 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몇 안되는 산장. 연하천산장에서 몸을 뉘여 본 적은 많지 않지만 정겨운 모습은 그리움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하다.

<연하천 산장, 오른쪽에 설치된 데크를 빼면 옛모습 그대로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14시. 점심을 먹고 연하천 산장을 떠난다. 이제 남은 벽소령까지의 오늘 일정. 부담은 없지만, 계속 내리는 비로 체력 소모는 커지고, 날씨는 점점 쌀쌀해 진다. 비에 대한 충분한 준비를 했다지만 내의까지 젖어드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벽소령까지 조심 또 조심하자고 얘기한다.

형제봉

남은 길은 호락하지 않다. 한 구비 돌면 끝날 것 같은 길은 반대쪽으로 길머리를 잡는다. 돌고나면 커다란 바위벽 봉우리가 앞을 가로 막는다. 형제봉. 커다란 두 개의 바위벽이 사람 하나 통과하지 못할 것 같은 간격으로 서있고, 그 중간에는 몇 개의 촉스톤(낌돌)이 박혀 있다. 등산로는 오른쪽으로 돌아 나 있다. 형제봉을 돌고 나면 나타날 것 같은 벽소령은 아직도 소식이 없다. 추위에 떠는 나그네들은 남아 있는 길이 야속하다. "정말 다 왔다"라는 거짓말을 연신 뱉어 내어 보지만 이제는 믿지 않는 눈치다. 그래도 어쩌랴~ 가야 할 길은 내 발 밑에 놓여 있는 것을...


                <한 고비 돌때 마다 나타나는 언덕. 비를 머금은 낙엽과 바위로 미끄럽다.>

<형제봉 근처 작은 봉우리에서 보는 운해. 벽소령에 펼쳐진 운해를 기대하게 한다.>

벽소령

벽소령산장은 지리산을 동서로 가르는 임도의 중간에 서 있다. 전라도 함양/음정과 경상도 하동/의신으로 이어지는 임도. 우리는 그 임도를 군사작전도로로 알고 있다. 1950년대에 지리산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토벌군이 닦아놓은 길이라고 한다. 음정마을 쪽으로는 4륜 자동차로 벽소령 산장 직전까지 오를 수 있는 정도의 길이지만 의신 방향은 이제 오솔길로 변해 있다.

빨치산. 우리 현대사가 남긴 부끄러운 역사. 그 현장의 중심에 벽소령 산장은 서 있다.

<벽소령 산장에 도착.>

<벽소령 산장에서의 망중한>

산장에 도착해 예약확인하고, 힘겨워하는 동료들을 쉬게 한다. 장비들을 챙겨 취사장으로 내려가 저녁거리를 준비한다. 삼겹살, 고등어 통조림, 김치, 푸성귀 약간 그리고 스페인에서 협찬(?)해 준 브랜디 한 병! 푸짐하다.

어둠을 대비해 가스등을 밝히고, 스토브의 불을 일으킨다. 밥을 짓고, 찌개를 끓이고 삼겹살을 굽니다. 어느 새 비는 그치고 운해가 내 발을 간지럽히고 있다.

미처 삼겹살을 준비하지 못한 옆 팀의 애처로운 눈길을 피하지 못하고 삼겹살 몇 점을 나누는 호기도 부려본다. 브랜디 한 병과 팩 소주 5개가 4명의 몸과 동화가 끝날 때쯤 우리는 지리산의 품 속에 온전히 들어 와 있음을 느낀다.

다음 날 산장을 예약하지 못한 우리의 일정을 벽소령에서 내리기로 했다. 벽소령에서 음정마을로 이어지는 임도로 산책하듯이 내려서기로 결정하고 난방이 되어 있는 침상위에 몸을 눕힌다.

음정마을

벽소령 산장에서 음정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6.7Km. 줄달음질 치듯 달리면 1시간이면 될 거리지만 바쁠 것 없는 나그네는 한껏 호사스러움에 빠져본다.

어제 내린 비로 세상을 깨끗함을 더하고, 주 능선에서 때 늦은 단풍에 아쉬워하던 마음은 고도를 낮춰가는 음정마을 임도에서 붉고 노란 색물을 뚝뚝 떨구어 보내고 있다.

                 <음정마으로 향하는 임도>

            

< 음정마을. 팔거리가 몇 개 안 되는 가게에서 맥주로 하산 주를 하고 함양으로 나가는 버스를 타러 간다.>

Epilog

누군가는 내게 물었다.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산을 찾는 것 아니냐고, 그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이제 또 다시 그렇게 물어온다면 대답할 수 있다.

내게 현실이 산에서 도피해 있는 것이라고....

2011. 10. 21, 폭